파비오 카펠로는 이탈리아 출신의 전설적인 축구 감독으로, AC 밀란, 레알 마드리드, AS 로마, 유벤투스, 잉글랜드 대표팀 등 명문 구단과 국가대표팀을 이끌며 수많은 우승 트로피를 들어 올렸다. 그는 철저한 조직력과 강한 수비 전술을 바탕으로 팀을 운영했으며, 전술적인 완성도와 경기 운영 능력에서 높은 평가를 받았다. 하지만 지나치게 실용적인 전술과 권위적인 지도 방식으로 인해 비판을 받기도 했다. 이번 글에서는 파비오 카펠로의 축구 커리어, 그가 얻은 별명, 그리고 그의 지도 방식에 대한 비판을 다룬다.
파비오 카펠로의 커리어
파비오 카펠로는 1946년 이탈리아에서 태어나 선수 시절 미드필더로 활약했다. AS 로마, 유벤투스 등의 명문 클럽에서 뛰었으며, 이탈리아 국가대표로도 활동했다. 하지만 그의 진정한 업적은 감독으로서 이루어졌다. 카펠로는 1991년 AC 밀란의 감독으로 본격적인 지도자 생활을 시작했다. 당시 밀란은 아리고 사키 감독의 지휘 아래 혁신적인 압박 축구로 유럽을 정복했지만, 카펠로는 사키와는 다른 접근법을 사용했다. 그는 조직적인 수비를 강화하고 실리적인 경기 운영을 강조하며 밀란을 이끌었다. 결과적으로 그는 1991-92 시즌 세리에 A 무패 우승을 달성하며 큰 성공을 거두었다. 이후에도 1994년 UEFA 챔피언스리그 우승을 포함해 밀란에서 여러 차례 리그 정상에 올랐다. 이후 레알 마드리드, AS 로마, 유벤투스 등의 클럽을 거치며 리그 우승을 차지했고, 잉글랜드 대표팀과 러시아 대표팀을 맡으며 국제무대에서도 도전했다. 하지만 대표팀에서는 클럽에서만큼의 성과를 내지 못하며 아쉬움을 남겼다. 카펠로의 전술 철학은 강한 수비 조직과 철저한 실용주의에 기반을 두고 있었다. 그는 항상 ‘이기는 축구’를 최우선 목표로 삼았고, 불필요한 공격보다는 효율적인 경기 운영을 강조했다. 이 때문에 그는 뛰어난 수비 전술가로 평가받았지만, 일부 팬들과 전문가들은 그의 스타일이 너무 보수적이라고 비판하기도 했다.
그의 별명
카펠로는 지도자로서 성공을 거두며 여러 가지 별명을 얻었다. 그중 가장 유명한 별명은 총사령관이다. 이 별명은 그의 강력한 리더십과 엄격한 지도 방식에서 비롯되었다. 그는 선수들에게 강한 규율을 요구했으며, 훈련과 경기 중에도 높은 집중력을 유지하도록 강조했다. 그의 스타일은 마치 군대식 훈련과도 비슷해 총사령관이라는 별명이 붙었다. 카펠로는 단순히 전술적으로 팀을 조직하는 것뿐만 아니라 선수들의 정신력을 강화하는 데에도 집중했다. 그는 경기 중 선수들이 나태한 모습을 보이는 것을 극도로 싫어했고, 이를 개선하기 위해 강도 높은 훈련을 진행했다. 이러한 훈련 방식은 선수들에게 큰 부담이 될 수도 있었지만, 동시에 팀이 강한 정신력을 갖추도록 만들었다. 이로 인해 그의 팀들은 위기의 순간에도 흔들리지 않는 모습을 보이며 경기에서 뛰어난 집중력을 유지할 수 있었다. 또 다른 별명은 아이언 매니저로, 이는 그의 강직한 태도와 원칙적인 지도 철학을 반영한 것이다. 카펠로는 팀 내에서 절대적인 권위를 행사했으며, 선수들에게 예외를 두지 않는 것으로 유명했다. 심지어 스타 선수들도 그의 엄격한 기준에서 벗어날 수 없었고, 이를 어긴 선수들은 벤치로 밀려나거나 방출되기도 했다. 한편, 그의 실용주의적 전술과 보수적인 경기 운영 방식 때문에 일부 팬들은 그를 재미없는 축구의 대명사라고 부르기도 했다. 카펠로의 팀은 승리를 위해 철저하게 조직된 축구를 구사했지만, 상대를 압도하는 창의적인 공격보다는 효율적인 경기 운영을 우선시했기 때문에 팬들에게는 다소 답답한 축구로 비치기도 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의 철학은 클럽 축구에서 많은 우승을 이끌었으며, 그의 별명들은 단순한 평가를 넘어 그의 지도 스타일을 가장 잘 설명하는 표현들이 되었다.
그에 대한 비판
카펠로는 감독으로서 성공을 거두었지만, 그 과정에서 많은 비판과 논란도 있었다. 카펠로의 전술은 강한 수비 조직과 효율적인 공격을 강조했지만, 때때로 지나치게 보수적인 접근을 했다는 비판을 받았다. 그는 경기에서 리드를 잡으면 공격을 최소화하고 수비적으로 운영하는 경향이 강했다. 이러한 스타일은 결과적으로 많은 우승을 가져다줬지만, 팬들 사이에서는 지루한 축구라는 혹평을 받기도 했다. 카펠로는 권위적인 지도 스타일로 인해 여러 선수들과 갈등을 빚기도 했다. 그는 선수들의 개성을 존중하기보다는 엄격한 규율을 강조했고, 이에 반발하는 선수들과 종종 충돌했다. 대표적인 사례가 2006년 레알 마드리드에서 발생한 ‘베컴 사건’이다. 당시 카펠로는 데이비드 베컴이 미국 MLS로 이적을 발표하자, 시즌 종료까지 베컴을 기용하지 않겠다고 선언했다. 그러나 베컴은 훈련에서 성실한 모습을 보였고, 결국 카펠로는 자신의 결정을 번복하고 다시 베컴을 선발 명단에 포함시켰다. 또한, 2010년 남아공 월드컵에서 잉글랜드 대표팀을 이끌 당시에도 선수들과 원활한 소통이 부족했다는 비판을 받았다. 그는 잉글랜드 선수들에게 지나치게 엄격한 규율을 적용했고, 이로 인해 선수들이 심리적으로 위축되었다는 평가를 받았다. 결과적으로 잉글랜드는 16강에서 독일에 1-4로 대패하며 탈락했다. 카펠로는 클럽에서는 성공을 거뒀지만, 대표팀에서는 기대만큼의 성과를 내지 못했다. 잉글랜드 대표팀과 러시아 대표팀을 맡았지만, 주요 대회에서 눈에 띄는 성과를 거두지 못하며 지도력에 대한 의문이 제기되었다. 대표팀에서는 짧은 기간 동안 팀을 조직해야 하기 때문에, 클럽과 달리 선수들과의 관계 형성이 중요하다. 하지만 카펠로의 강압적인 스타일은 국가대표팀과 잘 맞지 않았고, 결국 그는 대표팀 감독으로서 인상적인 기록을 남기지 못한 채 물러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