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범근은 한국 축구 역사에서 가장 위대한 선수 중 한 명으로 평가받는다. 그는 한국 축구의 해외 진출이 흔치 않던 시기에 유럽 무대로 도전장을 내밀었고, 독일 분데스리가에서 눈부신 활약을 펼치며 ‘아시아의 전설’로 자리 잡았다. 당시만 해도 유럽 무대에서 아시아 선수가 성공하는 것은 거의 불가능에 가까운 일이었지만, 차범근은 이를 해냈고, 이후 한국뿐만 아니라 아시아 선수들의 유럽 진출에도 큰 영향을 미쳤다. 특히, 그는 분데스리가에서만 98골을 기록하며 아시아 선수로서는 전무후무한 성과를 남긴 그는 단순한 축구 선수를 넘어 ‘개척자’로 불릴 자격이 충분하다. 본 글에서는 차범근의 유럽 진출 배경과 분데스리가에서의 활약, 그리고 한국 축구에 미친 영향을 심층적으로 분석해 본다.
차범근의 유럽 진출, 도전의 시작
차범근은 1953년 대한민국 경기도 화성에서 태어났다. 어려운 가정 형편 속에서도 축구에 대한 열정을 키워갔고, 중·고등학교 시절부터 두각을 나타내며 엘리트 선수로 성장했다. 이후 고려대학교에 진학한 그는 빠른 스피드와 강한 체력을 앞세운 플레이로 주목받았고, 졸업 후 한국 실업 축구팀인 공군 축구단과 한국전력에서 활약하며 국가대표팀에도 발탁되었다. 당시 한국 축구는 국제무대에서 강한 경쟁력을 갖추지 못했던 시기였다. 1970년대에는 아시아 축구가 세계 무대에서 큰 영향력을 행사하지 못했고, 해외 진출도 거의 이뤄지지 않았다. 하지만 차범근은 이러한 한계를 극복하고 더 큰 무대에서 도전하고 싶다는 열망을 품고 있었다. 그 기회는 1978년 찾아왔다. 독일 분데스리가의 다름슈타트 98이 그에게 관심을 보였고, 차범근은 마침내 유럽으로 떠나게 되었다. 당시 한국 선수가 유럽으로 이적하는 것은 매우 이례적인 일이었으며, 많은 이들이 그의 성공 가능성을 의심했다. 하지만 차범근은 강한 정신력과 남다른 노력으로 이 낯선 환경에 적응하기 시작했다. 다름슈타트 98에서의 경험은 짧았지만, 이는 차범근에게 유럽 축구를 배우는 중요한 과정이 되었다. 이후 1979년, 그는 분데스리가 명문 구단인 아인트라흐트 프랑크푸르트로 이적하게 되었고, 이곳에서 본격적으로 유럽 무대에서 자신의 가치를 증명하기 시작했다.
분데스리가에서의 활약과 전설이 된 기록들
차범근은 아인트라흐트 프랑크푸르트에서 1979-80 시즌을 시작하며 본격적인 유럽 무대 적응을 마쳤다. 그의 빠른 스피드와 강력한 슈팅 능력은 독일 축구에서도 충분히 통할 수 있음을 입증했고, 첫 시즌부터 뛰어난 활약을 펼쳤다. 특히 1980년, 그는 아인트라흐트 프랑크푸르트를 UEFA컵 우승으로 이끄는 데 중요한 역할을 했다. 이는 한국 선수로서는 최초의 유럽 대항전 우승 기록으로, 그의 이름을 독일뿐만 아니라 유럽 축구계에서도 알리는 계기가 되었다. 당시 차범근은 분데스리가에서도 꾸준히 득점하며 주전 자리를 확고히 다졌고, 팀 내 핵심 선수로 인정받았다. 1983년, 차범근은 또 다른 독일 명문 구단인 레버쿠젠으로 이적했다. 많은 사람들이 그의 전성기가 끝났다고 예상했지만, 그는 오히려 더욱 발전된 모습을 보였다. 레버쿠젠에서 5시즌을 뛰며 꾸준한 활약을 이어갔고, 1988년에는 UEFA컵 우승을 차지하며 유럽 무대에서 두 번째 우승컵을 들어 올렸다. 차범근의 분데스리가 통산 기록은 308경기 출전, 98골이라는 놀라운 수치를 자랑한다. 이는 단순히 아시아 선수를 넘어 분데스리가 전체에서도 주목할 만한 기록으로 남아 있다. 또한, 그는 독일 팬들에게도 존경받는 선수로 자리 잡았으며, 차붐(Cha Boom)이라는 별명까지 얻으며 사랑받았다.
차범근이 한국 축구에 미친 영향
차범근의 유럽 도전은 단순히 개인적인 성공에 그치지 않고, 한국 축구 전체에 깊은 영향을 미쳤다. 그의 도전 정신과 업적은 이후 한국 축구 선수들의 해외 진출을 촉진하는 중요한 계기가 되었다. 첫째, 그는 한국 선수들의 유럽 진출 가능성을 입증했다. 차범근이 분데스리가에서 성공하자, 한국 선수들도 세계 무대에서 충분히 경쟁할 수 있다는 인식이 확산되었다. 이는 이후 박지성, 이영표, 손흥민과 같은 선수들이 유럽에서 활약하는 데 있어 중요한 기반이 되었다. 둘째, 그는 한국 축구의 발전을 위해 지도자로도 활동했다. 1997년, 그는 한국 축구대표팀의 감독으로 선임되어 1998년 프랑스 월드컵을 준비했다. 비록 성적은 기대에 미치지 못했지만, 그의 공격적인 전술은 이후 한국 축구가 보다 현대적인 스타일로 변화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했다. 셋째, 차범근은 은퇴 후에도 해설위원과 지도자로서 후배 선수들에게 많은 조언을 남겼다. 그는 젊은 선수들에게 끊임없는 노력과 체력 단련의 중요성을 강조하며, 유럽 무대에서 성공하려면 강한 정신력이 필수적이라는 점을 강조했다. 특히, 그는 차범근 축구교실을 운영하며 유소년 축구 발전에도 기여하고 있다. 이를 통해 그는 한국 축구의 미래를 밝히는 데 헌신하고 있으며, 많은 유망주들이 그의 가르침을 받고 성장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