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릭 로이(Éric Roy)는 프랑스 축구계에서 흔히 말하는 저평가된 지도자 중 하나였습니다. 선수 시절의 명성과는 달리, 감독으로서의 커리어는 다소 굴곡졌고, 오랫동안 감독직보다 행정직과 해설자로 활동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그는 스타드 브레스트(Stade Brestois 29)에서 다시 지도자로 돌아왔고, 혼란스러웠던 팀을 빠르게 정비하며 잔류 그 이상을 노리는 팀으로 탈바꿈시키고 있습니다. 이번 글에서는 전술이나 포지션 운용이라는 틀을 넘어서 심리, 위기 대처, 팀 문화 구축이라는 관점에서 에릭 로이 감독을 조명해봅니다.
브레스트에서의 부활
에릭 로이가 다시 프랑스 리그1의 벤치로 돌아왔을 때, 그를 주목한 사람은 많지 않았습니다. 그는 2011년 OGC 니스를 끝으로 정식 감독직에서 물러난 뒤, 한동안 스카우트, 기술이사, 해설위원 등의 다양한 역할을 맡았지만, 벤치로 돌아오리라 예상한 이는 드물었습니다. 그런 그가 2023년 브레스트 감독으로 전격 선임되었을 때, 현지 언론조차 긴급 대책일 뿐이라는 식의 평가를 내렸습니다. 하지만 로이는 그 낙인을 깨는 데 오래 걸리지 않았습니다. 브레스트는 당시에 강등권에서 허덕이며, 전술 정체성과 팀 분위기 모두 무너진 상황이었습니다. 그는 부임 후 화려한 전술 변화보다 조직 재정비와 기본기 회복에 집중했습니다. 특히 첫 4주간은 선수 개인 훈련량과 정신력 회복에 초점을 맞췄고, 불필요한 인터뷰나 언론 노출은 일절 삼갔습니다. 이 시기 가장 인상적인 점은, 로이가 감독이라기보다 조정자처럼 행동했다는 점입니다. 이미 선수단은 2~3명의 감독 교체로 신뢰를 잃고 있었고, 언론은 매 경기마다 감독의 거취를 점쳤습니다. 그 속에서 그는 전술을 설명하기보다, 선수들과 개별 면담을 수차례 진행하며 지금 이 팀에 필요한 것은 복잡한 전술이 아니라 회복이라는 메시지를 심었습니다. 결과는 빠르게 나타났습니다. 브레스트는 기존보다 수비 라인을 5~10m가량 끌어올리며 압박을 유도했고, 수비 시 전형적인 4-4-2를 유지하며 단순하지만 탄탄한 수비 구조를 복원했습니다. 전환 플레이 역시 속도보다 방향을 중시하는 전술적 절제로 설계되었고, 이는 실점률 감소와 승점 확보로 직결되었습니다. 감독으로서의 화려함보다 팀을 살리는 실용성, 복잡한 철학보다 현장의 목소리를 먼저 듣는 겸손함. 이것이 에릭 로이가 브레스트에서 부활할 수 있었던 첫 번째 이유였습니다.
팀 운영의 심리학
에릭 로이의 감독 방식은 놀라울 만큼 심리학적입니다. 그는 이론보다 감각, 분석보다 공감을 우선하는 방식으로 팀을 운영합니다. 경기 전 기술 미팅은 짧지만, 선수 개별 심리 상태를 파악하는 시간은 그보다 길게 확보합니다. 이는 단순히 잘할 수 있다고 격려하는 수준이 아니라, 각자의 컨디션, 스트레스 수준, 지난 경기 후 느낀 감정 등을 꼼꼼히 기록하고 대응하는 정교한 운영 방식입니다. 그는 선수를 신체적 조건뿐 아니라, 심리적 조건에 따라 기용하기도 합니다. 한 예로, 지난 시즌 브레스트의 핵심 수비수 중 한 명은 경기당 실수가 잦아지며 출전 기회를 잃었지만, 로이는 그를 기술적인 문제가 아니라 불안정한 심리 상태 때문이라 판단해 훈련 방식 자체를 바꿔주었습니다. 단 3주 만에 해당 선수는 부활했고, 후반기 팀의 상승세를 이끈 주역 중 하나가 되었습니다. 로이는 기자회견에서도 감정을 솔직하게 표현하는 편입니다. 팀이 잘할 때는 자화자찬보다 선수들이 해냈다는 식의 겸손함을, 부진할 때는 책임은 내게 있다고 말합니다. 그는 자신을 지휘자보다는 공간 조성자 혹은 감정 조율자로 생각하는 지도자입니다. 이러한 리더십은 특히 젊은 선수들에게 긍정적으로 작용합니다. 브레스트는 예산이 큰 팀이 아니기 때문에 유망주 육성은 필수인데, 로이는 선수들이 실수를 두려워하지 않도록 만드는 분위기를 설계합니다. 그 결과 브레스트는 실점은 줄고, 공격 찬스는 늘어나며, 선수 개개인의 플레이는 점점 과감해졌습니다. 결국 전술이 만들어내는 승리는 일시적이지만, 심리적 신뢰와 유대감이 만드는 승리는 지속적입니다. 에릭 로이는 바로 그 지속가능한 팀 문화를 이해하고 실천하는 리더입니다.
프랑스 하위권 팀에게 필요한 것
현대 축구는 분석과 데이터를 기반으로 합니다. 많은 감독이 포지션맵, 볼 리커버리 지표, 패스 네트워크를 통해 전술을 구성합니다. 그러나 프랑스 리그1의 하위권 팀들, 특히 브레스트 같은 팀에게는 이론 이전에 현장의 감각과 현실성 있는 전략이 우선입니다. 에릭 로이는 이 점을 누구보다 잘 이해하고 있습니다. 그는 상대를 분석하는 데 많은 시간을 들이지만, 그 분석을 선수들에게 전달할 때는 단순화합니다. 10분짜리 전술 미팅 대신 3개의 키워드로 요약된 작전판, 경기 내 시나리오를 2가지로만 나눠서 설명하는 방식은 선수들의 전술 흡수력을 높입니다. 그는 축구는 복잡한 게임이지만, 선수의 머릿속이 복잡해선 안 된다는 신념을 갖고 있습니다. 또한, 그는 선수 기용에서도 수치보다 상황을 먼저 봅니다. 누가 더 많이 뛰었는가보다는, 누가 더 필요한 타이밍에 집중할 수 있는가를 따집니다. 예산이 넉넉하지 않은 팀에겐 전력 외 선수가 없어야 하며, 모든 자원을 실전에 맞춰 운영하는 순발력 있는 전략이 필요합니다. 로이는 이 점에서 매우 현실적인 지도자입니다. 2023~2024 시즌, 브레스트는 선수 개인 평균 시속 수치에선 리그 중하위권이지만, 90분당 득점 전환율과 세트피스 성공률은 상위권에 위치합니다. 이는 체력전이 아닌 전술적 타이밍과 집중력, 그리고 훈련장 밖에서 설계된 플랜이 실제 경기력에 영향을 주고 있다는 명백한 증거입니다. 에릭 로이는 이론적 깊이를 자랑하는 타입은 아닙니다. 그러나 작은 팀을 생존시키고, 조직을 단단하게 만들며, 현실을 냉정하게 바라보는 축구 철학은 그 자체로 높은 가치가 있습니다. 하위권 팀에게 필요한 것은 스타일이 아니라 살아남는 방법입니다. 그리고 그는 그 해답을 알고 있는 감독입니다.